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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보려고 돈 벌어서 미국서 왔지" 풍선 타고 날아다닌 '트로트 왕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노성옥(64)씨는 직장에 3주 휴가를 내고 지난 20일 한국을 찾았다. 25, 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임영웅의 공연 '아임 히어로-더 스타디움'을 보기 위해서다. 임영웅은 환갑을 넘은 노씨가 일터를 지키게 하는 원동력이다. "일해야죠, 비행깃값 벌려면. 하하하." 24일 공연장에서 만난 노씨의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노씨가 고향땅을 밟은 건 이번이 처음. 그는 "임영웅이 서울에서 가장 큰 경기장에서 공연한다고 해 뜻깊은 무대가 될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24일 노씨는 미국 애틀랜타주, 미주리주, 캐나다 토론토 등 해외에서 온 60, 70대 관객 7명과 함께 공연장 주변을 돌고 있었다. 이들처럼 상암동 공연장 주변을 돌며 축제의 기분을 미리 즐긴 '겉돌이 관객' 행렬이 공연 하루, 이틀 전부터 이어졌다. 임영웅의 팬들에게 이번 공연이 특별한 공연이기 때문이다.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2026년까지 리모델링 공사로 문을 닫으면서 당분간 가수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큰 무대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최대 6만여 명을 들일 수 있는 이곳에서 단독 공연을 연 트로트 가수는 임영웅이 유일하다. 그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단독 공연을 한 솔로 가수는 1990년대 '문화 대통령' 서태지(2008년)와 '강남스타일'을 통해 세계를 말춤으로 들썩인 싸이(2013년), 빅뱅 멤버 지드래곤(2017년)뿐이었다. 임영웅과 트로트 팬덤이 한국 공연 시장 지형을 바꾸며 K팝 못지않은 '현상'이 됐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임영웅의 팬덤이 ①중·노년 여성 중심에서 확장해 가족 단위로 덩치가 커지고 ②해외에서 젊은 팬층이 새로 유입하면서 이뤄졌다. 25, 26일 이틀 동안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몰린 관객은 총 10만 여 명으로, 가족 단위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25일 만난 32세 이모씨는 임영웅 포토월을 배경으로 아버지(63)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씨는 "PC방에서 티케팅을 해 경남 진주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보러 왔다"며 "가족 모두 같은 가수를 좋아하게 된 건 임영웅이 처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공연장 안내 요원들에 따르면, 재외동포가 아닌 외국인 관객들도 공연장 입장에 대해 물었다.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뮤직 관계자는 "공연장에 외국분들이 종종 오신다"고 말했다. 21세 스페인 여성 알렉사는 '스페인 영웅시대(임영웅의 스페인 팬덤 이름)'다. 그는 한국일보에 "K팝을 듣다 한국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유튜브에 임영웅의 '사랑해요 그대를'(2022) 뮤직비디오가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떠서 우연히 보고 팬이 됐다"며 "열정적이면서도 팬들에게 헌신적인 임영웅의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왔고, 임영웅 공연장도 찾아갔다. K팝이 달군 한류 열기가 해외에서 트로트로도 번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3 베트남 한류소비자 심층분석' 자료를 보면,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남자 솔로 가수는 임영웅으로 조사됐다. K팝 기획사 한 관계자는 "K팝 시상식이 전 세계로 생중계될 때 해외 팬덤에서 'LYW(임영웅) 인기 무섭다' 등의 반응을 보여 신기했다"고 말했다. 안팎에서 높아진 관심을 토대로 임영웅은 지난해 1년간 235억 원(물고기뮤직 감사보고서 기준)을 벌어들였다. 한때 '지역 행사 가수'로 여겨졌던 트로트 가수가 보여준 격세지감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트로트 가수의 첫 공연에선 진풍경도 펼쳐졌다. 임영웅은 '아임 히어로'란 문구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헬륨으로 작동되는 푸른색 기구를 타고 공중에 뜬 채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2~3층 객석의 관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는 모던록 스타일의 '런던 보이'를 비롯해 발라드곡 '사랑은 늘 도망가', '모래 알갱이' 그리고 트로트곡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따라따라'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 30곡을 불러 공연을 다채롭게 꾸몄다. 공연장 주변은 이틀 내내 하늘색(임영웅 팬덤 상징색)으로 물들었다. 화제의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패러디해 '영웅 업고 튀어'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만들어 입은 관객도 있었다. 관객 대부분은 젊은 K팝 팬들 못지않게 환호하며 공연을 즐겼다. 26일엔 비가 내리자 우비를 입은 관객들이 객석을 빈틈없이 채웠다. 임영웅은 "상암벌이 하늘색으로 물들지 누가 알았겠나. 이 무대에 있으면서도 울컥했다"며 "꿈이 이뤄졌다"고 감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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