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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아프리카 개입

입력
2023.12.05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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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AFP 연합뉴스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지난 11월 29일 10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중국의 긴장 관계를 완화하는 등 미국 외교 정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키신저와 아프리카의 관계는 어땠을까?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개입은 좋지 않은 결과만 남겼다. 키신저는 당시 전형적인 백인 우월적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아프리카 대륙 내 흑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아울러 칠레의 좌파 정부를 전복시킨 쿠데타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아르헨티나 군대가 자국민을 상대로 벌였던 ‘더러운 전쟁’엔 눈을 감았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 조정을 중요시했지만, 상대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을 경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프리카에서 키신저의 활동은 대륙 남서부에 위치한 앙골라에서 내전이 발발하면서 시작됐다. 앙골라 내전은 그가 베트남 전쟁 종식을 위해 성사시킨 파리 협정이 체결된 지 2년 후인 1975년 시작됐다.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함락된 지 불과 몇 달 후이기도 하다. 베트남에서의 패배로 망신을 당한 키신저는 혼란에 빠진 또 다른 개도국에서 자신의 명성을 회복할 기회를 감지했다. 그는 동남아시아에서 사용했던 방식(은밀한 행동과 현실주의적 분석, 자신이 획득한 정보에 대한 믿음)에 기대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하는 전쟁에 미국을 몰아넣은 것이다. 그는 미 국무부 소속 아프리카 전문가들을 '선교사' '선행가'라고 부르며, 그들이 제공한 정보나 제안을 무시했다.

키신저는 앙골라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패배로 이어졌다. 당시 키신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부와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 중 한 명인 자이르(지금의 콩고 민주공화국)의 모부투 세세 세코와 협력, 앙골라 좌파 반군(앙골라 해방인민운동ㆍMPLA)을 공격했다. 키신저는 ‘친소련’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반군을 물리침으로써 베트남 전쟁 이후 실추된 미국의 이미지를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좌파 반군은 앙골라 국민의 지지를 얻었고, 쿠바로 부터는 수천 명의 군사적인 도움까지 받았다. 이런 반전은 그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앙골라 내전은 해가 갈수록 더 격렬해졌고 이 과정에서 최소 50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반군이 내전에서 승리했다. 결국 키신저의 아프리카 개입은 앙골라에서의 장기 전쟁(1975~2002)뿐만 아니라, 속임수, 비밀 등 잘못된 접근 방식이 초래한 패배, 그리고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연장으로 이어졌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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