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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기·위계·성기능까지...커플 초상화를 보면 다 나온다

입력
2024.05.23 11: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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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계의 미학: 근대 커플들의 초상

편집자주

좋은 예술 작품 한 점에는 질문이 끝없이 따라붙습니다. '양정무의 미술 읽어드립니다'는 미술과 역사를 넘나들며 대중과 함께 호흡해 온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여러분의 '미술 지식 큐레이터'가 되어 그 질문에 답하는 연재입니다. 자, 함께 그림 한번 읽어볼까요.


5월은 가정의 달, 가정의 근간이 되는 커플을 그린 불멸의 그림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회에는 르네상스 커플 초상화 2점을 살펴봤는데(기사 마지막 부분에 연관 기사 링크) 이번 회에는 근대 커플 초상화 3점을 더 감상한다. 이전 시기에 비교하면 훨씬 살가운 장면을 연출하지만, 막상 그림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막장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작품이 있어 긴장하게 된다.

평등한 관계 암시하는 17세기 부부의 초상

프란스 할스, '부부 초상화'(이삭 마사와 베아트릭스 반 데어 라엔 추정), 1622년, 140×166㎝,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라익스 뮤지엄. 심장이 뛰는 왼쪽 가슴으로 향한 남편의 손, 반지를 낀 아내의 손가락, 포도 넝쿨과 엉겅퀴까지 모두 결혼을 상징하는 요소다.

프란스 할스, '부부 초상화'(이삭 마사와 베아트릭스 반 데어 라엔 추정), 1622년, 140×166㎝,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라익스 뮤지엄. 심장이 뛰는 왼쪽 가슴으로 향한 남편의 손, 반지를 낀 아내의 손가락, 포도 넝쿨과 엉겅퀴까지 모두 결혼을 상징하는 요소다.

커플들의 모습을 담은 이중 초상화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프란스 할스(1581년경~1666)가 1622년에 그린 '부부 초상화'다. 나무 둔덕에 걸터앉아 서로 어깨를 기댄 한 쌍의 부부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인다. 두 부부의 표정도 화사해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달콤한 행복감을 잘 표현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제작됐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중산층 시민이 권력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림 속 주인공은 모두 올블랙 슈트에 새하얀 칼라의 옷을 입고 있어 당시 네덜란드의 주류였던 청교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교도라면 당연히 엄격한 자기 절제를 앞세워야 할 것 같지만, 그림 속 부부는 애정 표현에 있어 거침이 없어 보인다. 특히 둘은 밀착해 앉아 있는데 부인은 환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오른팔을 남편 어깨 위에 툭 걸쳐 놓고 있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보인다. 남편은 부인의 적극성이 싫지 않은 듯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 자세로 그는 자신이 결혼의 충실함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할스도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담쟁이넝쿨을 바닥부터 끌어올려 배경의 나무까지 휘감게 했다. 오른쪽 먼 배경에 낭만적인 정원 속을 거니는 행복한 연인을 그려 넣고, 남성 옆에는 네덜란드어로 충실함을 의미하는 엉겅퀴까지 집어넣어 화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두 사람의 자세뿐만 아니라 표정까지 편안해 보이기 때문에 이 부부가 가문과 가문 사이의 정략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으로 맺어졌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특히 평등해 보이는 부부 때문에 17세기 네덜란드 사회가 근대 시민사회로 한 발짝 더 가깝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광활한 대지와 표정 없는 부부의 초상

토머스 게인즈버러, '앤드루 부부', 1750년경, 69×119㎝, 런던 내셔널 갤러리. 배경에 보이는 광활한 대지는 모두 그림 속 부부가 소유한 땅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부부와 부동산을 그린 삼중 초상화다.

토머스 게인즈버러, '앤드루 부부', 1750년경, 69×119㎝, 런던 내셔널 갤러리. 배경에 보이는 광활한 대지는 모두 그림 속 부부가 소유한 땅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부부와 부동산을 그린 삼중 초상화다.

다음으로 살펴볼 영국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의 '앤드루 부부 초상화'(1750년경)는 영국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을 소장한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유럽 미술에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화'가 있다면, 영국에는 '앤드루 부부 초상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림을 보면 앤드루 부부는 탁 트인 벌판을 배경으로 멋지게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편 로버트는 막 사냥을 끝낸 듯 장총을 들고 사냥개와 함께 서 있고, 부인 프랜시스는 품이 넓은 비단옷과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다소곳이 앉아 있다.

그림 속 부부의 분위기는 앞서 본 할스의 그림과 완전히 다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위기의 옷을 입은 채 약간의 거리까지 두고 무표정으로 화면 밖을 바라본다. 화가는 여기서 두 사람의 친밀감보다는 두 사람의 신분과 부를 강조하는 듯하다. 실제로 이 그림에서 보이는 땅 대부분은 이 부부가 실제 소유한 땅이다. 따라서 이 그림의 주인공은 부부뿐만 아니라 배경에 펼쳐진 1,214만569.3㎡(3,000에이커)의 땅, 즉 여의도 면적의 4배 이상 되는 거대한 토지다.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부부와 함께 이들 소유의 부동산까지 그린 삼중 초상화로 봐야 한다.

이 그림은 게인즈버러가 막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린 작품이다. 화가는 그림 속 남자 주인공 로버트 앤드루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여자 주인공 프랜시스 앤드루의 아버지는 화가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동네 유지였다. 화가와 부부 모두 서로를 잘 알았지만, 부부의 신분이 높았기 때문에 실제로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었을 것 같지 않다.

사실 이 초상화는 화가 게인즈버러가 앤드루 부인의 아버지, 즉 앤드루의 장인에게 갚아야 할 돈을 대신해서 그려준 일종의 부채 탕감용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보면 부부의 표정과 자세에서 보이는 거만함이 좀 더 잘 이해된다. 아마도 이 그림이 품고 있는 시골 상류층의 도도함이 오늘날의 우직한 영국 상류층의 이미지와 잘 연결되기 때문에 이 초상화가 영국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화가가 그림 속에 부부를 조롱하는 모티브를 숨겨 놓았다고 한다. 남자의 허리춤에 놓인 축 처진 화약주머니는 남자의 무기력한 성기능을 암시하고, 그 뒤에 보이는 한 쌍의 당나귀는 두 부부의 아둔함을 우회적으로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화가는 지체 높은 동년배 친구 부부에게 일종의 복수극을 벌였다는 해석이 있다. 게인즈버러라는 화가가 비평 정신이 투철했던 작가였기에 이런 급진적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앤드루 부부 초상화' 세부. 허리춤에 놓인 축 처진 화약주머니는 남자의 무기력한 성기능을 암시하고 그 뒤에 보이는 한 쌍의 당나귀는 두 부부의 아둔함을 우회적으로 조롱한다.

'앤드루 부부 초상화' 세부. 허리춤에 놓인 축 처진 화약주머니는 남자의 무기력한 성기능을 암시하고 그 뒤에 보이는 한 쌍의 당나귀는 두 부부의 아둔함을 우회적으로 조롱한다.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커플

장우성, '화실', 1943년, 167.5×210.5㎝, 리움미술관. 그림 속 두 사람은 어긋난 시선으로 현대의 고독한 커플들을 그리고 있다. 창작 공간 속에서 화가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창작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월전미술관 제공

장우성, '화실', 1943년, 167.5×210.5㎝, 리움미술관. 그림 속 두 사람은 어긋난 시선으로 현대의 고독한 커플들을 그리고 있다. 창작 공간 속에서 화가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창작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월전미술관 제공

지금 이 순간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은 장우성의 아틀리에 속 두 남녀가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현재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장에 걸려 있어 세계 미술애호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장우성(1912~2005) 화가가 31세 때인 1943년에 그린 '화실'에서 두 남녀는 앞서 본 '앤드루 부부'보다 훨씬 더 머쓱한 관계로 그려져 있다.

그림 속 인물은 장우성과 그의 아내로 알려져 있는데, 그림의 무게중심이 등장인물이 아니라 두 커플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한복을 단아하게 입고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여성은 화실을 방문한 아내일 수도 있고 모델일 수도 있다. 여기서 화가는 서양식 격자무늬 바지에 셔츠를 입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서양식 옷을 입은 남성과 한복을 입은 여성, 그리고 둘의 시선은 서로 어긋나 있어 두 인물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 무덤덤해 커플 초상화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여성의 손에 놓인 책과 남성의 파이프 담뱃대를 스마트폰이나 PC로 바꿔보자. 요즘 흔히 보는 커플들의 모습과 너무 똑같지 않은가. 집에서나, 카페 같은 외부 공간에서나 현대의 커플들은 각자 보고 싶은 세계를 보면서 가끔씩 소통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너무 과한 친밀감보다는 약간의 거리감이 더 안정적인 관계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화실'을 보면 1943년의 그림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동시대적 정서를 갖춘 초현대적 작품으로 새롭게 읽힌다.

흥미로운 것은 화면 속 두 인물 중 여성 쪽의 비중이 훨씬 커 보인다는 점이다. 여성은 그림 한가운데 다리를 꼰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다. 화가로 보이는 남성은 사다리에 걸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파이프 담배만 줄곧 피우고 있다. 여성의 말쑥한 한복은 밝게 빛나면서 남성이 입은 무거운 채도의 작업복과 대조를 이룬다. 손바닥으로 남성 쪽을 가려보면 남성은 그림에 후에 추가된 것처럼 화면 공간 속에서 이질적이고 주변적이다.

이 그림을 통해 화가 장우성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이 그림은 현대의 고독한 커플들을 한발 앞서 그린 선구적 초상화일 수도 있고, 일상 속에서 창작의 세계를 꿈꿔야 하는 화가들의 곤궁한 처지를 보여주는 창작의 알레고리(풍자하거나 의인화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현 방법)일 수도 있다. 이러한 다채로운 해석을 던져주기 때문에 커플을 그린 이중 초상화는 세상사를 담는 재미있는 화제라고 거듭 생각하게 된다.

양정무의 미술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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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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