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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 사람 사는 곳"... '도파민 제로' 촌사람들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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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 사람 사는 곳"... '도파민 제로' 촌사람들의 항변

입력
2024.05.26 19: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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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양' 비하 영상 논란 확산
"고향이 웃음거리 전락" 여론 싸늘
소멸 위기로 힘든데... "인식 바꿔야"

11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올라온 영상에서 출연자들이 경북 영양의 한 제과점을 방문해 햄버거빵을 먹으며 지역비하성 발언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11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올라온 영상에서 출연자들이 경북 영양의 한 제과점을 방문해 햄버거빵을 먹으며 지역비하성 발언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도시 사람들이 지방을 바라보는 편견이 그대로 담긴 게 아닌가 싶어요."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모를 따라 도시로 이사한 남준규(35)씨의 고향은 경북 영양군이다. 지금은 제2의 고향이 된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삶의 터전을 일궜지만, 그에게 영양은 여전히 특별한 곳이다. 본관부터 영양이다. 수많은 별이 쏟아져 내리던 밤하늘, 할머니 손을 잡고 읍내 오일장에 나간 날, 집 앞 개울가에서 동생과의 물놀이 등 추억이 한둘이 아니다. 이사를 간 뒤에도 명절이나 집안일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영양을 찾을 때면 괜히 설렜다. 청양고추(청송+영양)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남씨는 이제 '대도시' 사람이다. 고향을 떠올리면 너무 조용하고, 다른 곳보다 일찍 하루가 끝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영양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통을 트일 수 있는 탈출구가 돼줬다.

지역 위기 상처 덧댄 영상 하나

경북 영양군청 공무원들이 피식대학의 영상을 보고 허탈해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유튜브 캡처

경북 영양군청 공무원들이 피식대학의 영상을 보고 허탈해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유튜브 캡처

강원 양구에서 한 군생활을 제외하고 지역사회를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찐' 경상도 사나이 남씨에게 유튜브 '피식대학'의 '경상도 호소인' 영상은 삶의 낙이었다. 친근하면서 어설픈 사투리를 쓰는 출연자들이 경상도 곳곳을 소개하는 취지에도 공감이 갔다. 그들이 고향을 찾았다는 소식에 그는 누구보다 들떴었다.

그러나 35분 분량의 영상을 보는 내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출연진은 한적한 영양 읍내를 돌아다니며 지루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비하 발언도 예사였다. '내 고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전이 있지나 않을까 끝까지 지켜봤지만 영양은 조롱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남씨는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영상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면서 "이곳을 모르는 사람에게 괜한 편견을 심어줄 것 같아 걱정"이라고 씁쓸해했다.

관광객들이 경북 영양군 입암면 선바위관광지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인공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은 선바위와 서석지, 인공폭포, 자연생태마을, 산촌박물관, 고추홍보전시관, 분재야생화테마파크 등이 한곳에 몰려 있는 영양의 대표 관광지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관광객들이 경북 영양군 입암면 선바위관광지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인공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은 선바위와 서석지, 인공폭포, 자연생태마을, 산촌박물관, 고추홍보전시관, 분재야생화테마파크 등이 한곳에 몰려 있는 영양의 대표 관광지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양의 인구는 지난달 기준 1만5,517명. 지난해 29명이 태어났고, 281명이 세상을 등졌다. '저출생 고령화'를 절절하게 체감하는 지역이다. 울릉도를 제외하고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인구도 가장 적다. 유튜브 영상은 이런 조용한 소도시 영양을 전국적 화제의 중심에 올려놨다.

그저 장난으로 영상을 만들었을지 몰라도 파장은 컸다. 출연자들은 백반집과 제과점, 로컬푸드장 등을 찾아 "메뉴가 특색이 없다" "굳이 영양까지 와 먹을 음식은 아니다" "할머니 살을 뜯는 거 같다" 등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도파민 제로 시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붙였다. 재미 없는 지역이라는 의미다.

영상이 공개된 후 비난이 쏟아지자, 출연자들은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코미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태로 모든 부분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규모의 차이가 수준 차이는 아냐"

한 관광객이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자작나무 숲을 둘러보고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 관광객이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자작나무 숲을 둘러보고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인구 감소로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역민과 출향민들에게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경기 광명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경북 영덕군 출신 김홍재(39)씨는 "'촌'을 바라보는 대도시 사람들의 생각을 단적으로 드러냈다"면서 "운이 없게도 영양이 타깃이 됐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김도혜(36)씨도 "도시와 농촌이 갖는 규모의 차이가 수준의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양군은 가뜩이나 지난해 산나물축제 '바가지 요금' 논란으로 이미지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던 터에 이번 일이 터져 대책 마련이 쉽지 않으나,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방송 인터뷰에서 "속상한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영양을 전국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며 "많은 국민이 영양을 찾도록 적극 홍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튜브 출연자들을 향해서도 "다시 와달라"고 손짓했다.

다른 소규모 지자체도 '백약이 무효'라는 지적에도 지방 소멸을 늦추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지자체 홍보담당 공무원은 "지역은 대도시에 비해 즐길 거리도, 인프라도 뒤떨어지지만 주어진 자원을 활용해 부족한 점을 채우려 분투 중"이라며 "영양 비하 논란이 도농 간 인식 차이를 좁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서 촬영한 은하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영양군 수비면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서 촬영한 은하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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