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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집 탄소 원료로 뭐든지 생산" 재활용 기술의 미래? 친환경 눈가림?

입력
2023.07.13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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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 방문한 아이슬란드 스바르트셍기. 황량한 산맥이 끝없이 이어지던 도로 끝에 '조지 올라 재생가능 메탄올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스바르트셍기=김현종 기자

지난 5월 30일 방문한 아이슬란드 스바르트셍기. 황량한 산맥이 끝없이 이어지던 도로 끝에 '조지 올라 재생가능 메탄올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스바르트셍기=김현종 기자

지난 5월 30일 아이슬란드 남서부 스바르트셍기. 황량한 산맥이 이어지던 도로 끝에 이 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공장이 나타났다. 수백㎡ 크기에 각종 파이프와 열교환기, 화학물질 저장탱크, 압축기가 조합돼 있다. 얼핏 보기엔 전통적 중화학공업의 소규모 설비 같지만, 실은 이산화탄소로 메탄올을 만드는 첨단 시설이다.

이 ‘조지 올라 재생가능 메탄올 공장’은 2011년 아이슬란드 기업 ‘카본리사이클링인터내셔널(CRI)’이 탄소 포집·활용(CCU) 기술을 실험하려 만들었다. 인근 지열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적은 양의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한 뒤 수소(H)와 결합시켜 재생 메탄올(CH₃OH)을 제조하는 것이다. 수소는 지열발전소의 재생에너지로 물(H₂O)을 분해해 조달했고, 메탄올 합성에 필요한 열과 냉각수는 지열발전 부산물을 이용했다. ‘국제 탄소 재활용’이라는 회사 이름에 충실하게 공정을 설계한 셈이다.

오마르 프레어 시규어비욘슨 CRI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지열발전소 배출 탄소 5,500톤으로 매년 메탄올 4,000톤을 만든다”며 "탄소와 폐열을 대기에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했다. CRI의 분석에 따르면, 재생 메탄올은 화석연료로 만든 메탄올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10%에 불과하다.

이렇게 만든 메탄올은 쓰임새가 다양하다. 자동차ㆍ선박ㆍ항공 연료는 물론 플라스틱 제조 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날 현장에서도 재생 메탄올로 구동되게 만든 승용차를 볼 수 있었다. CRI 측은 구체적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재생 메탄올을 연료로 판매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오마르 프레어 시규어비욘슨 CRI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지난 5월 30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재용 PD

오마르 프레어 시규어비욘슨 CRI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지난 5월 30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재용 PD


탄소 포집으로 만든 향수·보드카

탄소를 포집해 다른 물질로 전환하는 CCU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각국의 약속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탄소중립의 첫 단추는 화석연료와의 결별이다. 단순히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휴대폰의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다. 공업용 에탄올과 메탄올도 석유로 만든다.

석탄·석유가 사라진 미래에는 무엇으로 상품을 만들어야 할까.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의 주범이나 모든 물질의 기본이기도 한 탄소에 주목한다. 대기 중이나 공장 굴뚝에서 배출되는 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자원으로 되살리자는 것이다. 폴리우레탄 등 플라스틱 소재, 탄소흡수 경화 시멘트 등 건축자재 등이 재활용 방안으로 우선 꼽힌다.

포집 탄소를 활용한 생활용품은 이미 등장했다. 2019년 코카콜라 브랜드인 발저는 대기에서 모은 탄소를 주입한 탄산수를 스위스에서 판매했다. 미국 에어컴퍼니는 2021년 포집된 탄소로 에탄올을 만들어 향수, 손소독제, 보드카 등을 출시했다. 명품 브랜드 구찌도 올해 탄소포집 향수를 출시했다. 탄소포집 기술 기업인 란자테크, 코티 등과 손잡고 제철소 등에서 나온 탄소로 만든 에탄올이 향수 원료다. 다만 아직까지는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다.

구찌가 올해 상반기에 출시한 향수 '웨얼 마이 하트 비트'는 탄소를 포집해 만든 재생 에탄올을 사용했다. 구찌 홈페이지 캡처

구찌가 올해 상반기에 출시한 향수 '웨얼 마이 하트 비트'는 탄소를 포집해 만든 재생 에탄올을 사용했다. 구찌 홈페이지 캡처

보다 진지하게 주목받는 분야는 이퓨얼(E-fuel·친환경 연료) 개발이다. 대형 선박이나 비행기의 연료를 탄소 재생 메탄올로 바꾸는 것이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전기차로 대체한다고 해도, 대형 운송수단은 현재의 배터리 기술로 전기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대안이다.

세계 최대 해운회사 머스크는 2030년까지 이퓨얼 선박을 상업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투자와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달 7일 국제해사기구가 2050년 해운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도 재생 메탄올 생산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공기 중 탄소포집(DAC)을 통해 모은 이산화탄소 7,400만 톤으로 이퓨얼을 만들어 잔존 내연기관차량의 연료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CCU 필요 에너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다만 석유를 무작정 메탄올로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다. 메탄올 1톤은 56MWh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데, 정작 메탄올 제조에는 그보다 2배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해양설계연구소(MARIC)에 따르면, 액화천연가스(LNG)를 메탄올로 변환해 선박을 운영하면 오히려 변환 이전보다 탄소가 1.5배 배출된다.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해 메탄올 제조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조달해야만 탄소배출량이 LNG 선박의 80.8%로 줄어든다.

지열이 풍부해 지열발전도 발전한 아이슬란드에서는 쉽게 온천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한 마을이 온천수에서 나온 수증기로 뒤덮여 있다. 레이캬비크=안재용PD

지열이 풍부해 지열발전도 발전한 아이슬란드에서는 쉽게 온천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한 마을이 온천수에서 나온 수증기로 뒤덮여 있다. 레이캬비크=안재용PD

CCU가 탄소중립에 기여하려면 여기에 드는 에너지도 탄소배출이 적은 방식으로 생산돼야 한다는 얘기다. CRI가 지열발전소를 활용하는 이유도 그렇다. 최지나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현 에너지 공급구조가 화석연료 기반이라 이산화탄소 포집·전환 과정에서 온실가스 추가 배출이 불가피하다”며 “재생에너지가 기반이 되어야 CCU 기술이 탄소감축 수단으로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에너지 발전량은 2021년 기준 석탄·가스·석유 등 화석연료 비중이 63.9%에 이른다. 신재생에너지는 7.5%에 불과한데, 이마저 석탄 액화가스화 등 사실상 화력발전과 다름없는 에너지도 포함된 수치다.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1.6%로 늘린다는 계획이나 그때도 화석연료 비중이 그 2배인 42.6%다.

에너지 전환이 더디다 보니 정부는 CCU 활로를 해외에서 찾고 있다. 호주 인도네시아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국가에 국내 포집 탄소를 운반해 메탄올, 합성 나프타 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지난 4월 확정된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등장했다. 기본계획은 CCU로 감축할 탄소량을 2030년 640만 톤, 2050년 2,250만 톤으로 잡았다. 2030년 목표치는 당초 계획보다 10만 톤 늘렸는데, 여기엔 해외 CCU 실적 기대가 반영됐다. 하지만 해외 탄소 수출을 허용하는 런던의정서 개정안조차 발효되지 않은 상황이라 목표 달성 여부는 불투명하다.

지난 4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논의된 'CCUS 산업·기술혁신 추진안'에 담긴 '재생에너지 풍부 지역 국가와의 CCU 사업협력 모델' 모식도. 추진안 캡처

지난 4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논의된 'CCUS 산업·기술혁신 추진안'에 담긴 '재생에너지 풍부 지역 국가와의 CCU 사업협력 모델' 모식도. 추진안 캡처


CCU 활용,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탄소를 포집해 지하에 영구 저장하는 탄소포집·저장(CCS)과 달리, CCU로 만든 연료나 제품은 사용 과정에서 탄소를 도로 배출할 수 있다. CCU를 탄소감축 수단으로 인정할지를 두고 논의가 분분한 또 다른 이유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6차 종합보고서에서 CCS만을 유효한 감축 수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예컨대 포집한 이산화탄소로 만든 드라이아이스가 기화되면 탄소가 다시 대기 온실가스가 된다. 재생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포집한 탄소를 생물학적으로 전환해 미세조류를 배양하거나 광물화하는 경우라면 감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사례별로 세세한 계산이 필요하다.

CCU가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을 복잡하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아이슬란드에서 탄소를 포집해 만든 재생 메탄올을 우리나라 선박 회사가 수입해 연료로 사용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실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거둔 국가는 탄소를 포집한 아이슬란드인지, LNG 대신 이퓨얼을 사용한 우리나라인지, 아니면 선박이 주로 운항한 제3의 국가인지를 따지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배출원별 기준, 즉 온실가스 인벤토리가 필요하지만, 본격적인 CCU 상용화 없이는 논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CCU 분야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탄소중립에 기여하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는 공정 전환 과정에 CCU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의 고은 부대표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국민들이 재화와 에너지 소비 수준을 유지하려면, 해상풍력 등 가용한 탄소감축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는 전제로 CCU를 활용할 만하다"고 말했다.

CCU 기술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만큼, 조급한 기대보다는 장기적 안목으로 잠재력을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 2021년 정부가 발표한 'CCU 기술혁신 로드맵'을 보면 화학적 전환 부문 18개, 생물학적 전환 부문 9개, 광물화 부문 7개 기술 가운데 2027년 이전에 상용화되는 기술이 없다. 2030년쯤에야, 그것도 절반가량인 16개 기술에 상용화 시동이 걸릴 전망이다. 민간 연구소 분석도 마찬가지다. 넥스트가 작성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K-MAP)'에서 CCU는 2040년부터 등장한다. 그즈음에야 기술이 무르익을 거란 얘기다.

최지나 책임연구원은 “CCU를 당장 2030년 대규모 탄소감축 목표 달성의 수단으로 활용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며 “CCU 기술이 탄소중립에 더 필요하고 중요해질 거란 관점으로 장기적 정책을 펴면서 불확실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혜정 기자
스바르트셍기=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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