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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예술 세포를 깨우는 건축, 토머스 헤더윅

입력
2023.09.04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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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의 아이콘이 된 현대건축

편집자주

'정태종의 오늘의 건축'은 치과의사 출신의 건축가인 정태종(58)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가 국내외 현대 건축물을 찾아 각 건축의 지향점과 특징을 비교하고 관련된 이슈를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4주에 1번씩 연재합니다.

헤더윅 스튜디오 서울 전시회.

헤더윅 스튜디오 서울 전시회.

최근 서울 도심 속 세계적인 건축가의 전시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옛 서울역사를 복원하여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난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Heatherwick Studio: Building Soulfulness)' 전시가 그 주인공이다. 새로운 건축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전 세계가 열광할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의 건축작품 전시라서 그런지 건축가와 건축 전공 학생은 물론 일반인과 MZ 세대까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긴 줄을 서서 관람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기존 건축 전시와는 다르게 해외 유명한 화가나 미술품 전시처럼 몰려드는 관람객 속에서 문득 그들이 만들어내는 낯선 사회 현상과 도시 풍경에 의구심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이름도 생소한 영국 건축가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과 영국 현대건축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에 위치한 모리JP타워(Mori JP Tower)는 토머스 헤더윅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헤더윅이 설계한 저층부는 유려한 곡선의 독특한 건축 공간이 만들어졌다.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에 위치한 모리JP타워(Mori JP Tower)는 토머스 헤더윅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헤더윅이 설계한 저층부는 유려한 곡선의 독특한 건축 공간이 만들어졌다.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토머스 헤더윅은 현재 건축과 도시계획을 중심으로 의자와 같은 가구 디자인 심지어 패션 분야까지 섭렵하고 있는 영국의 대표 건축가이다. 토머스 헤더윅이 이끄는 건축사무소인 헤더윅 스튜디오는 런던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로 1994년에 설립된 이후 30여 년 동안 세계적으로 혁신적인 건축 및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 특성은 인공물인 도시와 건축에 대비되는 자연의 생동감과 그에 따른 정신적 편안함을 위해 식물과 같은 자연 요소를 건축과 공간 디자인에 다양하게 적용한다. 그 결과 최신의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복잡계 이론인 기본적인 단위 요소의 반복과 그에 따른 복합적 공간구성을 통하여 기존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최첨단의 건축설계를 보여준다. 전시 작품을 둘러보면 건축작품 하나하나가 새롭고 독특해서 저절로 눈길이 간다. 이런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 서울 전시회

우선 토머스 헤더윅의 출신지인 영국의 현대건축이 어떤지 살펴보자. 1970년대 이후 영국의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는 아마도 애플 파크를 설계한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일 것이다. 최근 우리와 가까운 일상의 공간인 서울 여의도 빨간 기둥의 초고층 빌딩 파크원을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는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와 함께 현대건축의 상징인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전설적인 건축가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설계의 경향은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불리는 첨단 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건축 재료와 시공법을 이용한 건축설계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첨단, 합리성, 산업화 등을 바탕으로 하는 건축에는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간 소외나 자연과의 괴리감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복잡계 이론과 복잡계 건축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에 있는 하이브(The Hive) 건물은 벌집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외관으로 시각적 충격을 안겼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에 있는 하이브(The Hive) 건물은 벌집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외관으로 시각적 충격을 안겼다.

토머스 헤더윅의 건축에는 기존의 하이테크 건축과는 다른 부분이 나타난다. 그의 건축사례를 살펴보면 인공적 도시 환경의 문제 속에서 새로운 도시 건축적 탈출구를 제시하려는 듯이 보인다.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그의 건축 디자인은 디스토피아적 환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원시적 자연의 구현처럼 나타나는데 최종 결과물은 21세기 현대건축의 고민과 해결책으로 제시한 복잡계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복잡계 건축과 맥락을 같이한다. 즉 자연의 생성과 생명의 원리를 이용하여 작은 요소의 반복을 통한 복합적 건축의 공간화와 멈춰진 순간이 아닌 지속 변화하는 과정의 불확정적인 장을 보여주는 헤더윅 건축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혁신적인 경험의 장소가 된다. 혁신적 디자인이 도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토머스 헤더윅의 대표 건축작품은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이라 불리는 중국 상하이 엑스포 2010의 영국 파빌리온, 미국 뉴욕 맨해튼의 베슬(Vessel)과 리틀 아일랜드, 영국 런던의 롤링 브리지, 일본 도쿄 모리JP타워, 싱가포르의 더 하이브, 한국 서울 노들섬 공모전 제안 등이다.

그중 서울 헤더윅 스튜디오 전시와 관련된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의 모리JP타워는 최근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 지역은 그린 앤드 웰니스 커뮤니티라는 비전의 대규모 도쿄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도심 한복판에 대형 녹지와 함께 일본 최고층의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지형에 새로운 변화가 예고된 상태다. 헤더윅이 이곳의 저층부를 설계했는데 새로운 도시 생활환경 설계를 목표로 자연을 디자인에 통합하여 유려한 곡선의 독특한 건축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기존의 도시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초고층의 건축물보다 저층의 그물망 형태의 건축이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대건축과 아이콘(Icon, 도상)

싱가포르 더 하이브 건물의 내부 공간 역시 외관과 마찬가지로 유려한 디테일이 시선을 잡는다.

싱가포르 더 하이브 건물의 내부 공간 역시 외관과 마찬가지로 유려한 디테일이 시선을 잡는다.

현대건축은 기존의 현상학적인 공간 구현이나 형태적 새로움보다는 공간의 위상학적 관계가 중요하고 건축물의 형태는 관계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외치지만, 최근 스타 건축가에 의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도시의 상징을 자처하는 도상적 건축물을 쏟아낸다. 서울에도 경쟁하듯 유명 건축가의 서로 다른 디자인이 우후죽순 얼굴을 들고 있다. 도상(Icon)은 좋은 의미로는 상징과 대표성이지만 반대로 배경과는 대립하는 주변환경과의 경쟁일 수밖에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물리적 상징물은 거대한 스케일의 초고층,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기념비, 독특한 형태와 생활양식의 표본 등인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로 올수록 도시의 상징은 대규모의 건축물보다 새롭고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토머스 헤더윅의 건축은 특이하게도 그 속에 담은 혁신적인 의미와 함께 건축물의 형태도 눈에 잘 띈다. 누구나 한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인지하고 오래 기억한다. 이 건축가는 2015년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에 하이브(The Hive: Learning Hub South)라는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언덕 위에 위치하고 건축물 형태도 벌집 모양이라 멀리서도 알아볼 만한 건축물이다. 외부의 형태와 함께 내부의 디테일도 새롭고 독특하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 콘크리트를 다양하게 배합해서 줄무늬 효과를 만들고 이것을 반복해서 원통형의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디테일이 확장되어 건축 형태가 만들어졌다. 주변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곳이 학교의 상징물이라고 답할 만하다.

사람들은 왜 헤더윅 건축에 열광하는가?

노들 글로벌 예술섬 디자인 공모 포스터와 토머스 헤더윅이 공모전에서 선보인 '소리풍경' 프로젝트 . 서울시 제공

노들 글로벌 예술섬 디자인 공모 포스터와 토머스 헤더윅이 공모전에서 선보인 '소리풍경' 프로젝트 . 서울시 제공

토머스 헤더윅의 건축이 도시의 진정한 아이콘이 되는 것은 건축 외부의 독특한 형태도 한몫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건축물 내, 외부 공간구성의 새로운 관계, 그에 따른 사용자의 경험, 그리고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공간의 분위기 등 수많은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의 하이브는 외부 형태만 본다면 현대도시의 상징물이나 건축가 자신의 디자인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순한 도상적 건축이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내부 공간을 경험해보면 외부와는 또 다른 특별한 공간을 느낄 수 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나타나는 거대한 보이드 공간의 중정과 수많은 원형 베란다들이 만들어내는 모호한 공간과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분위기와 주변과의 시각적 연속성 등을 직접 경험하면 왜 이 건축물이 녹색 도시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롭고 놀라운 공간의 제공이 이들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도시의 아이콘은 크기나 형태에 있지 않다. 역할에 있는 것이다.

토머스 헤더윅은 2023년 봄 한국 서울 노들섬의 미래 디자인인 노들 글로벌 예술섬 기획 디자인 공모에서 소리풍경(Soundscape)을 주제로 한국의 자연과 풍경을 노들섬 위 음악적 파노라마로 이미지화하고 다양한 공간적 경험으로 치환한 건축을 선보였다. 건축적 개념의 디자인 제안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최신 건축 경향을 살펴볼 좋은 기회였다.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은 여전히 숭례문이나 경복궁이나 종묘로 생각하고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의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서울에 세계적인 건축가가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사용하면서 정작 한국 현대건축의 수준은 서양 건축의 아류 또는 베끼기의 결과물이라고 낮춰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편견 속에서도 최근 기성 건축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새로운 건축과 혁신적인 디자인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사실은 건축에 대한 기존의 편협한 사고와 경직된 한국적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대중의 열망이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해석해 본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건축 전시에 몰리는 사람들의 들뜬 얼굴에서 언뜻 한국 현대건축의 미래를 보았다.


글·사진=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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