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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등단만큼 기쁜 수상…'너 계속 소설 써도 돼' 응원처럼 느껴”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천운영]

입력
2023.11.23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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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천운영 작가
10년 만에 낸 소설집 '반에 반의 반'으로 선정
등단 24년 차에 "오래 쓸 수 있는 힘 얻었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한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천운영은 동년배 작가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변하는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중견 작가들은) 조금씩 하게 된다"면서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자신의 소설)이 상을 받는다고 하니 '나도 계속 써도 되겠다'고 힘을 얻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한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천운영은 동년배 작가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변하는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중견 작가들은) 조금씩 하게 된다"면서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자신의 소설)이 상을 받는다고 하니 '나도 계속 써도 되겠다'고 힘을 얻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등단 소식만큼 기쁘다는 말. 그저 의례적 수사로 이해했다. 등단 당시 '저력 있는 신예'로 주목받고 24년째 활동하는 중견 작가에게 상의 가치가 그렇게 클까, 의심도 했다.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의 주인공이 된 천운영(52) 작가를 지난 20일 인터뷰를 위해 대면하고서야 그 진심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수상에 대해 작가는 "등단을 하면 '너는 이제 소설가가 됐어'라고 인정받는 것과 똑같이 '너 계속 소설 써도 돼'라고 들은 느낌이라 정말 설렜다"고 소감을 밝혔다.

천운영은 2000년대 초반 단연 각광 받는 신진 작가였다. 등단 이듬해인 2001년 대산문학상의 창작기금을 받는가 하면 바로 첫 책인 소설집 '바늘'(2001)을 출간하고 신동엽창작상(2003)을, 두 번째 소설집 '명랑'(2004)으로 그해 올해의 예술상(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최)을 거머쥐었다. 당시 젊은 작가 천운영을 향한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증명하는 이력들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격려를 받은' 작가로 초반에 강렬한 이미지를 새긴 탓일까. 이후에도 호평을 받은 작품들은 있지만 상과 연은 잘 닿지 않았다. 천 작가 스스로도 "유난히 상복 없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한편으로는 초반에 큰 기회를 많이 가진 힘으로 계속 쓸 수 있어 "복 받은 작가"라고도 오히려 생각했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사실을 알고도 수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다.

수상의 기쁨이 배(倍)인 건 예상 밖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수상작인 소설집 '반에 반의 반'이 10년 만에 낸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페인 가정식 식당을 운영하고 남극에 빠져 다큐멘터리 촬영과 생물학 공부를 하면서 소설과는 잠시 떨어져 보냈던 터라 '내가 쓰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을 내심 갖고 쓴 책이다. 출간 직후인 지난 3월 인터뷰 당시(관련 기사 10년 만에 소설집 낸 천운영 "뜨거움보다는 따스함으로")에도 작가는 "마치 첫 책을 낸 기분"이라고 했었다. 수상으로 지금처럼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셈이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천운영 작가는 소설집 '반에 반의 반' 속 인물의 모델이 된 어머니 '명자씨'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민망해서 사인을 해놓은 책을 친구들에게 못 주겠다던 어머니가 최근 책을 갖고 나가셨더라고요. 그래도 (수상 소식에) 뿌듯하셨나봐요(웃음)." 김예원 인턴기자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천운영 작가는 소설집 '반에 반의 반' 속 인물의 모델이 된 어머니 '명자씨'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민망해서 사인을 해놓은 책을 친구들에게 못 주겠다던 어머니가 최근 책을 갖고 나가셨더라고요. 그래도 (수상 소식에) 뿌듯하셨나봐요(웃음)." 김예원 인턴기자

다섯 번째 소설집 '반에 반의 반'에는 그 10년의 시간이 축적돼 있다. 엄마들,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세대도 가치관도 다른 여성들이 다정함으로 보여주는 포용의 자세를 세심하게 그린 작품이다. 주변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해 그 삶을 제대로 읽어내려 상상력을 발휘하며 애쓴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소설의 본을 충실히 보여줬다고 심사위원들은 평가했다.

여성의 몸에 관한 서사는 언제나 천운영 작품의 핵심이다. 20여 년 전과 달라진 건, 사회와 페미니즘 양상이 세월에 따라 변하면서 우리 문학 안에서 작가의 위치가 약간 조정됐다는 것일 테다.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요즘 작가에서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미처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들을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양경언 문학평론가) 매력적 중견 작가로 말이다. 오해의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 말을 고르고 고르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되게 여성을 믿는 것 같아요. 진짜 여성의 정수를 품었을 때 발전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생각해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처럼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전쟁의 폭력적인 부분이 내 안에 있다면 그걸 다스리고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건 어머니한테 받은 부분이에요. 살아보니 후자가 더 세더라고요."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천운영의 소설집 '반에 반의 반'. 김예원 인턴기자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천운영의 소설집 '반에 반의 반'. 김예원 인턴기자

소설집의 '작가의 말'에 그 생각을 담은 문장이 있다. "어린 여자아이의 성기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해보니 늙은 여자의 젖통이다." 생식과는 거리가 먼 늙은 여자, 그녀가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빈 젖을 베풀 수 있는 그 품성이 결국 세상을 나아지게 한다고, 작가는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천운영 소설 속 '관능미'도 달라졌다. 플래시처럼 반짝이는 육체적인 것 대신 "보이는 육체에 포함된 역사, 그 역사 때문에 더 환하게 빛나는 관능"에 집중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작가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오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안도했다. 수상으로 그 힘을 얻었다는 의미였다. 요즘은 동화 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남극에서의 경이로운 경험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져서다. "신명 나게 쓰는 시간이 너무 뿌듯하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는 어느 때보다 글쓰기에 매료된 듯했다. 소설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천운영의 다음, 그리고 또 다음 질문을 계속 받아볼 수 있겠구나 싶어져 함께 안도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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