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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겪으며 진화하는 전차의 '창과 방패' 싸움

입력
2024.02.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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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스토얀카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파괴된 러시아 전차를 살펴보고 있다. 스토얀카=AP 뉴시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스토얀카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파괴된 러시아 전차를 살펴보고 있다. 스토얀카=AP 뉴시스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듬해 터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무기체계의 ‘창과 방패 대결’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매일 올라오는 실전 보고서들은 기존 무기들의 치명성과 효율성을 더 높이기 위해 어떤 개조·개량이 필요한지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고, 이에 따라 각국은 최신 전훈(戰訓)을 반영해 신무기를 내놓거나 기존의 무기체계를 개량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전차의 위력을 높이고 생존성을 극대화하는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하마스는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파괴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 전차 무력화시킨 휴대용 미사일

우크라이나 개전 초에는 전차를 향한 ‘창’이 우위인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이 제공한 보병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로 러시아의 기갑대군을 박살 냈다. 미국의 ‘재블린’은 우크라이나를 구한 미사일이라는 ‘세인트(聖) 재블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신예 전차를 최초로 파괴한 대전차 무기라는 영예를 얻으며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주문에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 중이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들은 러시아 전차의 본장갑은 물론 전차 외부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증가장갑도 무자비하게 뚫었고, 이 때문에 러시아는 개전 초 엄청난 숫자의 전차와 숙련된 전차병들을 잃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미국산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겨누고 있다. 하르키우=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병사가 미국산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겨누고 있다. 하르키우=AFP 연합뉴스

물론 창의 우위가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는 전차의 생존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차 주변에 추가 장갑재를 더 붙이고, 재블린과 같은 상부 공격형 미사일을 막기 위한 강철 지붕(Cope cage)을 전차 포탑 위에 달기 시작했다. 이 강철 지붕은 도로 주변의 빗물받이처럼 생긴 철제 구조물을 포탑 위에 지붕처럼 얹은 것인데, 이 구조물과 증가장갑이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대전차 무기에 의한 전차 피해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효과를 본 러시아는 전차는 물론 자주포와 장갑차에도 이러한 강철 지붕을 달기 시작했다.

전차 방어 위해 강철지붕과 능동방어장치(APS) 장착한 러시아와 이스라엘

러시아에 비해 기술·재정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는 이스라엘은 능동방어장치(APS)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APS는 차량의 전후좌우 4면에 소형 레이더를 달고, 이 레이더와 연동되는 요격탄 발사기를 장착한 방어장비다. 레이더가 적 미사일이나 로켓의 접근을 감지하면 곧바로 요격탄 발사기를 위협 접근 방향으로 돌려 요격탄을 발사해 위협 물체를 직접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스라엘의 APS는 가자지구 전투에서 이스라엘 전차의 생존성을 크게 높여주며 그 효과를 과시했는데, 개전 초 어떤 전차는 두 번 연속으로 날아온 대전차 무기를 APS로 요격한 뒤 역습으로 적 대전차 진지를 박살 내는 장면을 영상에 담아 공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이 실전에서 APS의 가치를 입증하자 각국은 경쟁적으로 APS를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APS가 대량 보급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드론’이 그 APS를 뚫을 비책으로 등장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대량으로 운용되고 있는 FPV(First Person View) 드론은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로 불리고 있다. 시중에서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소형 드론에 RPG-7이나 박격포탄을 테이프로 묶은 뒤, 드론 전방에 달린 카메라로 전방을 관측하며 전차의 취약 부분에 드론을 충돌시키는 방식이다. 전차의 엔진룸 위에는 배기를 위해 증가장갑을 붙일 수 없고, 강철 지붕도 엔진 뒤쪽을 완전히 가려주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한 이 드론은 거의 모든 유형의 표적을 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FPV 드론은 APS가 장착된 전차의 경우 APS가 높은 각도로 접근하는 저속 비행 물체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약점을 공략하고 있다. 명중 직전까지 사람이 직접 카메라 화면을 보며 목표물의 취약점을 찾아 최적의 공격 루트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무기는 기존의 다른 어떤 대전차 무기보다 더 위협적이다.

전차 취약 부분 공격하는 FPV 드론 '맹위'

러시아 병사가 공격용 FPV 드론을 조립하고 있다. 이 드론은 운용자가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보면서 공격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 쿠피얀스크=타스 연합뉴스

러시아 병사가 공격용 FPV 드론을 조립하고 있다. 이 드론은 운용자가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보면서 공격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 쿠피얀스크=타스 연합뉴스

이처럼 전차를 위협하는 무기가 다양해지자 각국은 적의 대전차무기가 어느 방향, 어떤 각도로 접근해도 막아낼 수 있는 APS를 찾기 시작했다. 요즘은 전차 1대에 100억~200억 원은 우스운 시대이고, 전차에 탑승하는 장병의 목숨 값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에 이제 APS는 ‘옵션’이 아니라 ‘선택’이 돼가는 추세다.

우리 군도 이러한 추세를 감안해 최근 전차 성능 개량 계획을 일부 공개했다. 현재 전력화되고 있는 K2 전차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개량은 적의 대전차무기와 드론이 그 어느 방향, 어떤 각도에서 접근해도 방어가 가능한 복합능동방어장치, 승무원이 신체를 전차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고도 외부 장착 센서를 통해 360도 전 방향을 주야간 관측할 수 있는 전장상황인식장치,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외부 위협을 자동으로 식별하고 대응하는 원격사격통제장치(RCWS)를 K2 전차에 이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행히 국내 업체들이 발 빠르게 관련 개념과 기술을 연구해 전력화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은 수출 시장을 고려해 오래전부터 K2 전차 성능 강화 방안을 모색해 왔고, 지난해 K2ME·K2EX 등 수출형 모델을 통해 앞서 소개한 첨단 기술들 대부분을 개발했거나 개발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생존성 강화 성능 개량이 K2 전차에만 한정된다는 점이다. K2 성능 개량은 2028년 창정비 입고 차량들을 대상으로 시작될 예정이지만, 같은 시기 진행되는 K1E2 개량이나 K1A2 개량에는 APS나 AI 기반 RCWS, 전장상황인식장치 등의 항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약 1,000대의 K1 전차를 오는 2038년까지 개량하는 K1E2 개량 사업은 포수조준경 교체, 냉방장치 장착, 보조전원공급장치(APU) 설치가 전부다. 구형 복합장갑을 교체한다거나 APS·RCWS와 같은 장비를 장착해 차체와 승무원 생존성을 향상시키는 개량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484대의 K1A1 전차를 개량하는 K1A2 개량 사업 역시 별반 차이는 없다. 엔진 출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동력 계통을 일부 손보고 K1E2와 마찬가지로 냉방·양압장치 교체, 사격통제장치와 조준경 교체 정도의 개량만 예정돼 있다.

우리 군도 전차 방어 성능 개량 힘써야

군 당국이 K2 전차에만 생존성 강화 개량을 시행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APS와 RCWS, 전장상황인식장치 등을 추가하려면 전차 1대에 30억~40억 원이 넘는 돈을 써야 한다. 4차 양산분까지 모두 합쳐도 전체 물량이 410대에 불과하고, 대당 10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전차인 K2에는 그러한 예산을 써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1,500여 대나 되는 K1 계열 전차, 그것도 획득 당시 가격이 30억~50억 원 정도였던 전차들에 전차 가격과 비슷한 개량비용을 쓰는 것은 한국군 정서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당 30억 원만 잡아도 1,500여 대를 개량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4조5,000억 원이니 군 입장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도하 훈련 중인 육군 K1A2 전차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도하 훈련 중인 육군 K1A2 전차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4조5,000억 원이 유사시 1,500여 대의 전차에 탑승한 6,000여 명 장병의 목숨을 살리는 비용이라고 생각을 바꿔보면 이 돈이 정말 아까운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각각 600여 대가 배치되는 K-21과 K808 장갑차, 병력수송용 장갑차로만 1,700여 대나 있는 K200 장갑차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각 장갑차에는 12명의 장병이 탑승하는데, 단순 계산으로 이 병력만 3만4,800여 명에 달한다. 세트당 30억 원으로 가정했을 때 이들 차량에 APS와 RCWS, 전장상황인식장치와 같은 장비들을 추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8조7,000억 원이다. 이 8조7,000억 원이 3만4,800여 명 장병의 목숨 값보다 비쌀까?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군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제한된 예산을 쥐어짜야 하는 군의 입장에서 조 단위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은 결단이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보면 유사시 장병 수만 명의 목숨을 살리고 군의 필승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 아닌 의무의 영역이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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