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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보는 '커플 팰리스''더 커뮤니티'...그래도 얻는 게 있다

입력
2024.03.17 15:00
수정
2024.03.17 15:3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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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본성을 직면하는 두려움에 다가가기
Mnet '커플 팰리스', 웨이브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에서 출연자들은 상대의 정치적 성향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등을 추정하며 게임을 한다. 웨이브 제공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에서 출연자들은 상대의 정치적 성향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등을 추정하며 게임을 한다. 웨이브 제공

먼저 질문부터. 타인의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를 추측해 본 적 있나? 그가 어떤 동네에서 자랐을지 예상한 적은? 사람을 고작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거나 틀에 맞추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행위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짐작과 유형화를 통해 눈앞의 상대를 판단해 보았을 것이다. 상대에게서 어떤 전형성을 찾는 행위는 타인이라는 불확실한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방영 중인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은 인간의 유형화 본능을 적극 이용한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의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은 여성·남성 각각 6명으로 구성된 12명의 출연자가 ‘커뮤니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미션을 이행하며 싸우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쇼는 승패의 결과보다 참가자들 사이의 이념과 가치관 충돌을 그리는 데 더 큰 중점을 둔다. 경제적 계급(서민·부유)과 젠더(페미니즘·이퀄리즘), 정치(좌·우) 관점 그리고 개방성(개방·전통) 항목으로 평가된 참가자들의 ‘사상점수’는 ‘커뮤니티’에 공유되지 않는다. 출연자들은 화법과 습관을 통해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갈등을 겪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협력하기도 한다.

Mnet ‘커플 팰리스’는 유명 결혼정보회사 시스템에 기반한 커플 매칭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서로의 조건을 공개하지 않고 대화부터 진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과 달리 철저히 조건 중심의 소개팅을 지향한다. 미혼 여성과 남성 각 50명씩 결혼을 희망하는 100명의 출연자는 “S대 출신 변호사” “자산 5억에 연봉 1억” “미스코리아 출신” “부모님이 50억 원대 자산가” 같은 키워드로 자신의 스펙을 공개한다.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될 여자” “네 명의 아이를 낳아줄 여자”라거나 “명문대 출신에 전문직을 가진 남자” “양육은 보모에게 맡겨도 이해해 줄 남자” 등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배우자의 조건을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한다. 이곳에서 결혼이란 결코 손해 볼 수 없는 거래이므로 출연자들은 상대와 직접 눈을 마주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외모, 학벌, 배경, 재산 등을 재고 따지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커플 팰리스’에서 100명의 싱글 출연자들은 서로의 경제·사회적 조건을 비교하며 짝을 찾는다. Mnet 제공

‘커플 팰리스’에서 100명의 싱글 출연자들은 서로의 경제·사회적 조건을 비교하며 짝을 찾는다. Mnet 제공

로맨스만 제외하고 세상의 모든 접점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더 커뮤니티'의 참가자들과 결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 자신의 모난 부분을 필사적으로 감추는 '커플 팰리스'의 참가자들은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은 사회의 많은 문제가 '인간의 유형화' 때문에 발생한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나아가 그 문제는 대부분 '유형화할 수 없는 인간의 이해와 포용으로 해결된다'는 것도 보여준다. 익명의 채팅룸에서 각자의 사상을 관철하려 상대의 소중한 가치에 손상을 입히던 '더 커뮤니티'의 출연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나의 선택이 커뮤니티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판단하는 것에 집중한다. 외모와 경제적 조건만 보고 결혼 상대를 흥정하듯 골랐던 '커플 팰리스'의 출연자들은 삶에 대한 가치관을 교환하다 갈등을 겪으면서 ‘결혼 거래’를 허무하게 종료한다. 그 후 나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우연히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결혼의 조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두 작품은 소재 자체가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그 이유로 추천한다. 서로에게 간섭해야만, 싸움의 끝을 봐야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감각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안 봐도 뻔하다’고 회피했던 수많은 더미 속엔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관점들이 함께 묻혀 있다. 논쟁은 피곤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에 다가가는 것을 멈춘다면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실수로라도 보지 않으리라 눈을 질끈 감았을 땐 결코 알 수 없었을 시끄러운 자유를.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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