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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쉬운 길만 가서는 안 된다

입력
2024.04.30 00:00
수정
2024.05.01 07:2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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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2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2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미중 관계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企穩)고 말했다. 일부 중국 인사들은 작년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중 관계가 개선의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신중한 중국인들을 그렇게 믿게 만든 미국의 외교력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미중 관계는 여전히 깊은 구조적 갈등 상태에 있다.

일부 중국 학자들은 중일 관계가 겉으로는 갈등을 보이지만 실상 이전보다 '양호한 편'이라고 말한다. 중국을 그렇게 믿게 만든 일본의 외교도 대단하다. 하지만 필자가 만난 일본 외교관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관계가 안 좋을 때일수록 리스크를 더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양국 관계 주요 현안이 된 중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구속된 일본 제약사 간부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블링컨 방중에서 미중 양국은 '고위급 교류'를 지속하기로 했는데, 이는 미국이 요구한 것으로 리스크 관리를 위한 조치다. 미국은 중국에게 양국 관계가 '경쟁'(competition)임을 인정하라고 압박했고, 중국은 초기에 그 프레임을 거부하다가 결국 수용했다. 이에 따라 두 차례의 대면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이번 회동은 그 경쟁의 '가드레일'(guardrails)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갈등 해소가 아니라 갈등 관리다.

일본은 최근 기시다 총리의 방미를 통해 미일 동맹을 글로벌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로 했다. 중일 간 긴장이 높아지는 국면인데, 주중 일본대사는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중국과도 협력할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이 결국 미국과 함께 갈 것이라는 뜻이지만, 뒤에 '협력'의 여운을 더해 뉘앙스가 다르게 느껴진다. 중국도 속내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 발언에 중국 고위층 인사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제스처를 보인 것은 양국 기업인들에게 보내는 '안심 신호'로 해석된다. 이는 일본이 미국에 더욱 가까워지는 상황에서도 중일 민간 관계가 '양호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요한 점은 다들 중국과 적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기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일본 외교관은 "일본과 중국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일본은 중국과 대화하면서 리스크를 관리해 왔다. 우린 이걸 30년 했다. 한국은 이제 막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곱씹어 볼 만한 말이다.

한국은 현 정부 들어 한미동맹 중심으로 완전히 선회했다. 지난 정부에서 중국과 가까웠지만 사드 보복 등으로 실망한 국민들이 현 정부의 외교적 선명성을 지지하고 있다. 그래서 '방향은 맞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방향만 맞는 것은 외교의 초보적인 단계일 뿐이다. '글로벌 중추국가'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 가장 쉬운 외교만 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으려 한다면 국민들은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는 중국과 관련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국민 체감형 실질 협력을 확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제 그 내용을 실천하여 정체된 대중국 외교도 잘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국제정치 지각 변동의 난세에 한국 외교는 고차원 방정식에 능해야 한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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