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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으로 소멸하는 한국, 증세 얘기 안 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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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으로 소멸하는 한국, 증세 얘기 안 할 겁니까

입력
2024.05.07 0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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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대한민국' 낸 김현성씨 북토크 현장
"저출생 충격 이겨내려면 국가 재정 투입이 필수
재정건전성만 따질 뿐 왜 증세 목소리는 없나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북카페 오티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 겸 북토크에서 김현성(왼쪽) 작가가 한국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이드웨이 제공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북카페 오티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 겸 북토크에서 김현성(왼쪽) 작가가 한국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이드웨이 제공

"한국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투자하는 데 굉장히 인색합니다. 주식했다 하면 다 미국 주식을 사세요. 그리고 증세에도 굉장히 적대적이에요. 한국인이 유독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에 젖어 있는, 각자도생에 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라 그냥 돈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국가가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을 넘어 0.6대로까지 고꾸라지고 있는 한국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14세기 흑사병 직격탄을 맞은 유럽을 능가하는 수준의 인구 감소'란 평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러다 한국이 소멸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책, 도발적이고 다소 흉측한 제목의 '자살하는 대한민국'(사이드웨이 발행) 같은 책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선진국이지만 가난한 한국인

이 책을 쓴 김현성(36)씨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오티움에서 출간기념회 겸 북토크 무대에 올랐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금융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김씨는 여러 국제기구나 국내외 연구소 등이 생산한 각종 경제 관련 데이터를 꾸준히 살폈고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회사로 옮겨 사회 비평 작업을 해 왔다. '자살하는 대한민국'은 그 첫 결과물이다. 책은 발간 1주일 만에 중쇄에 들어갔다.

지난 3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3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씨의 문제의식은 인구 급감 충격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 모두가 큰일 났다고 하면서도 왜 아무런 움직임은 없는가다. 한국경제연구원 등의 자료를 보면 인구 감소로 인해 2021년 1조8,000억 달러이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50년 1조4,000억 달러로, 2070년에는 1조2,000억 달러로 줄어들어 세계 20위권으로 밀려난다. 인구가 아예 쪼그라들고 난 뒤에야 그 나름의 균형을 찾겠지만, 이런 감소세가 이어질 때는 엄청난 충격이 오게 마련이다. 이 기간 국민의 삶을 버텨 내게 해 줄 조치는 결국 정부의 재정이며 이를 뒷받침하려면 일정 정도의 증세가 불가피한데, 아무도 이 얘기를 안 한다는 뜻이다.

저출생 충격 이겨내려면 증세는 필수

우리 국민은 제 배 부르면 그만이고 공동체 일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걸까. 김씨는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았다. 바로 "선진국이 돼서 풍족하다지만 개개의 가정엔 여유가 없어서"다.

누구 탓도 아니다. 식량과 에너지 자급이 어려운,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라는 한국의 근본적 조건 때문이다. 먹고살기 좋은 땅이 아니어서 단순히 먹고사는 데만 해도 돈이 많이 든다. 최근 식료품 물가 앙등은 이런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증거다. 집값은 비싸고 내부 경쟁 또한 거세다. 사교육비만 해도 통계치를 들여다보면 대략 서울 기준 월 400만 원 수입에 아이 1명당 100만 원을 쓴다. 밥 먹고 집 사고 아이 키우는 것 자체가 돈이 많이 드니 살림은 늘 빠듯하고, 세금을 더 낼 여력은 없다.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기다 국가가 재정을 써서 국민 삶을 책임진다는 생각도, 경험도 희박하다. 최근 논란 중인 국민연금이 단적인 예다. 적립금 고갈 문제를 모두 우려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 기준 "독일은 정부지출의 23%를, 일본은 24.2%를, 미국도 18.6%를 공적연금에 투입한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의 공적연금 재정투입률은 미국의 절반 수준인 9.4%에 머무른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국민연금 논쟁에서 국가의 역할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국민이 얼마나 더 내고 덜 받아야 하는가'로만 치닫는다. 김씨는 이를 두고 "공동체의 유지 보수를 위해서 국가가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국가의 역할 확대에 대한 정치적 동의 있어야

기본적인 열악함에다 정부의 역할 미미, 두 가지 조건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합계출산율 0.6대에 진입한 대한민국',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김현성 작가의 '자살하는 대한민국'

김현성 작가의 '자살하는 대한민국'

결국 답은, 그 수준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저마다 돈을 조금씩 더 내고 그 돈으로 사람들이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 내놓는 데 있다. '재정건전성'이니 '인플레이션 우려'니 하는 건 그 뒤에 밀어닥치는 더 큰 파도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지금이라도 증세와 재정 확대라는 큰 방향성에 대한 정치적 동의가 절실하다. 한국은 해낼 수 있을까.

"한국은 정말 특별한 나라예요. 전 세계적으로 이만큼 수도권에 집중이 돼 있는 나라가, 이렇게 빨리 출산율이 떨어지는 나라가 없어요. 또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은데 GDP는 세계 10위권이에요.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만든 K팝은 또 세계적으로 유명해요. 저출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이 또한 세계 속에서 한국의 가치를 입증하는 일이 될 거라고 봅니다." 책 제목과 달리 김씨는 낙관적이었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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