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곡명, 음반과 스트리밍 사이트가 왜 다를까요?

입력
2024.05.05 17:00
15면
0 0

[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숫자·기호로 표기'가 원칙인 클래식음악 곡명
제목 붙이는 건 작곡자·감상자의 '상상과 경험'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의 녹음을 남겼지만 그것을 라흐마니노프 음악 해석의 완결로 보지 않는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의 녹음을 남겼지만 그것을 라흐마니노프 음악 해석의 완결로 보지 않는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대중음악은 곡의 오리지널리티, 즉 독창성이 가수에게 있다. 원곡 가수의 고유한 스타일과 음색, 템포와 악기 구성 등이 곡의 정체성이 된다. 그 곡을 다른 사람이 부를 수는 있지만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어떤 훌륭한 가수가 노래해도 폴 매카트니의 목소리로 부른 게 아닌 '예스터데이'는 가짜다. 전람회의 '취중진담'은 김동률의 목소리가 아니면 상상도 하기 싫다. 원곡만의 음색과 가사, 그 곡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쌓인 시간까지가 그 음악을 우리가 사랑하고 기억하는 이유다.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가 남긴 악보에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악보를 벗어난 음악은 가짜다. 악보라는 기호는 대중음악처럼 소리와 스타일을 완전한 형태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곡의 초연자는 있지만, 그 연주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증하거나 해석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협주곡을 연주하고 녹음한 것이 있지만, 그것을 해석의 완결로 보지는 않는다. 기호로 완성된 악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여지를 준다. 악보라는 기본 형태로 수백 년을 거쳐 전해 오는 명곡은 시대 흐름과 연주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재현된다. 고전음악의 힘이자 즐거움이다.

오리지널리티, 대중음악은 '목소리'에, 클래식은 '악보'에

클래식 음악은 작품 제목도 기호로 표기한다. 감동받은 음악의 제목을 찾아 보니, '작품 10에 3'이라는 숫자로 되어 있다. 제목만 들어도 '취중에 사랑을 고백하게 됐구나'라는 서사가 바로 읽히는 대중음악과 달리 클래식 음악은 암호처럼 음표와 숫자 뒤에 작곡가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꽁꽁 싸매어 감춰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곡의 이미지를 구상화해 제목을 붙여 부른다. 쇼팽의 에튀드 Op.10-3에는 '이별의 노래',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는 '운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제9곡은 하르트만의 원화에서 영감 받은 '닭다리 위의 오두막집'이라는 곡명보다 '바바 야가'라는, 원화에 등장하는 마녀의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2020년대에 이런 이름 짓기 현상이 부쩍 늘어났다. 요즘은 음반보다는 음원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시대다. 음반으로 감상할 땐 클래식 음악 작품의 숫자 제목이 문제 될 게 없었다. 음악감상이 유튜브나 스트리밍 사이트로 이동하게 되면서 검색 편의성이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K.467이라는 작품 고유번호로 찾았지만 이제는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 음악을 사용해 유명해진 영화 제목을 기입하는 것이 더 빠르다.

해석의 여지 넓혀 주는 클래식 음악의 숫자 제목

임윤찬 데카 레이블 첫 앨범 '쇼팽: 에튀드'의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임윤찬 데카 레이블 첫 앨범 '쇼팽: 에튀드'의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최근 데카 레이블에서 발매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Op.10 & Op.25' 앨범은 음반과 음원 데이터에 입력된 제목 표기가 다르다. 앨범에는 Op.10의 12개 곡, Op.25의 12개 곡이 모두 숫자로만 표기돼 있는데, 스트리밍 사이트의 디지털 음원은 Op.10의 두 곡을 제외한 모든 곡에 제목이 붙어 있다. 쇼팽이 붙인 것도, 임윤찬이 붙인 것도 아닌, 음원 검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는 음반사의 마케팅이다. 1800년대 관객과의 소통에 뛰어났던 리스트 역시 '초월기교 연습곡' 12곡 중 두 곡을 제외한 모든 곡에 별칭을 붙여 악보를 출판했다. 1판과 수정한 2판 악보에는 제목이 없었지만, 본인이 생각할 때 가장 파괴력 있다 싶었던 제4곡은 '마제파'(Mazeppa)라는 이름을 붙여 별도 출판도 했다.

클래식 음악은 기본적으로 기호와 숫자로 이뤄진 추상에서 출발한다. 악보를 통해 읽어내는 많은 것들이 음악가, 감상자, 시대의 해석에 따라 여러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작품번호를 외우고 음악사를 익히고 오랜 시간 다양하게 많이 들어보는 경험은 클래식 음악 감상에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감상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이 갖춘 '추상'이, 개인의 감상 안에서 '구상'이 되어가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즉각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지만 기호에 지나지 않았던 음악이 인생을 붙드는 강한 힘이 되어가는 과정은 경험해 볼 만하다.


객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